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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인문학 캠프 참여기: 작가들과의 소도시 대화

easy-info1 2025. 8. 3. 15:23

1. 인제, 인문학을 품은 자연의 도시

강원도 인제는 설악산 자락 아래 자리한, 산과 물의 기운이 가득한 고장이었다. 투명한 내린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저녁이면 바람이 언어처럼 귓가에 스며들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수필처럼 느껴졌다.

 

그런 인제에서 작가들과 독자들이 함께 모여 인문학 캠프를 열었다. 이 캠프는 화려한 무대나 복잡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대신, 소도시의 조용한 공간 안에서 자연과 사람, 글과 사유가 천천히 마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지정된 장소에 모여 서로의 글을 낭독했고, 인근 숲길을 함께 걸으며 나무와 강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도시의 소음 대신, 인제의 고요함 속에서 문장을 다시 써내려갈 수 있었고, 독자들은 작가의 언어를 가까이서 듣고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곳은 단지 캠프가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 **‘사유가 머무를 수 있는 여백’**을 품은 도시였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글과 사람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인제의 자연은 그 과정을 조용히 감싸주고 있었다. 이 인문학 캠프는 결국, 도시가 아니라 ‘느림과 사유’를 품은 공간이 글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체험하는 자리였다.

 

2. 작가와 독자, 평등하게 마주 앉다

캠프의 가장 특별한 순간은 작가와 독자가 이름 없는 이웃처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던 시간들이었다. 마을 북카페와 동네 도서관, 그리고 시골 마을회관의 평상까지, 만남은 어디에서든 가능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낭독하기보다 참가자들의 질문을 먼저 들었다. “왜 쓰세요?“라는 한 참가자의 물음에 한 작가는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고, 또 다른 작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라고 했다. 이런 대화는 단순한 강연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줬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었고, 그 말은 문학의 시작점이 되었다. 도시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깊이 있는 만남이 이 캠프 안에서는 자연스러웠다.

 

인제 인문학 캠프 참여기: 작가들과의 소도시 대화

 

3. 소도시의 정서가 빚어낸 문학적 풍경

인제라는 공간은 작가들의 사유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해질 무렵 민박집 앞을 서성이던 한 시인은 노을이 산을 물들일 때마다 자신 안의 침묵이 시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어느 에세이 작가는 마을 어귀에 있는 오래된 다리 아래서 만난 아이들과의 짧은 인사를 글감으로 삼기도 했다. 이렇게 인제의 풍경과 소소한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들에게 생생한 영감을 주었다. 소도시 특유의 느린 일상은 도시에서 놓치기 쉬운 감정을 포착하게 했고, 이는 글로 이어졌다. 인문학 캠프가 단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자리가 아닌, 일상의 풍경 속에서 스스로 문학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된 셈이다.

 

4. 인문학, 일상 속 대화로 스며들다

이번 캠프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보다 ‘인문학이 어떻게 살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식사 시간의 수다, 야간 산책 중의 침묵, 차 한잔 앞에 두고 나눈 삶의 이야기들이 모두 인문학적 대화였다. 작가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한 중학생 참가자는 캠프 마지막 날 자신의 일기장을 펼쳐 보이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읽혀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듣고 나의 삶을 조심스레 건네는 과정 속에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5. 소도시 인문학이 남긴 것들

캠프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각자의 도시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 갔다. 어떤 이는 캠프 기간 중 썼던 짧은 글을 다듬어 동네 문학지에 실었고, 어떤 이는 작가의 말 한마디를 일상의 동기부여로 삼았다고 했다. 인제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을 꺼낼 용기’와 ‘들어줄 준비’를 안겨준 도시였다. 비록 대규모 축제도, 유명 강연도 없었지만 이 조용한 인문학 캠프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인문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태도임을, 인제는 조용히 그리고 깊게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