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문화 탐방기

전북 정읍에서 만난 시인 신경림의 흔적과 문학길

easy-info1 2025. 7. 25. 17:06

1. 정읍,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도시의 새로운 발견

 

전라북도 정읍은 오랫동안 내장산의 단풍으로 잘 알려진 자연 관광지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이제 점점 다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겉보기엔 조용한 소도시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걸어보면 이곳에는 시간의 결이 쌓인 길과 사색을 품은 골목, 문학의 숨결이 깃든 장소들이 있다. 정읍은 그 공간적 깊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문학의 도시’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정읍시가 조성한 ‘문학길’은 단순한 걷기 코스를 넘어서, 지역 문인들의 시와 문장을 따라 도시의 정서를 함께 걷는 체험형 공간이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눈길을 끄는 시구절이 나지막이 속삭이듯 다가오고, 어딘가에는 설명 없는 조각 문장이 바람에 실려 마음을 자극한다. 이 길에서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신경림 시인이다. 그는 정읍 출신은 아니지만, 그의 시에 흐르는 민중적 서정성과 지역적 감수성이 이 도시의 풍경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정읍시는 신경림의 시구를 곳곳에 새기고, 해설과 함께 길 위에 놓음으로써 ‘문학을 걷는 감각’을 가능케 했다.그 시도는 문학을 단지 책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일상의 풍경 속으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자연과 문학이 만나는 이 도시의 시선은 조용하지만 깊다. 그리고 이 문학길을 걷는 사람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한 줄의 시가 되어 정읍의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전북 정읍에서 만난 시인 신경림의 흔적과 문학길

 

2. 신경림 시인의 시 세계와 정읍의 정서적 공명

 

신경림 시인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중 서정시인으로, 『농무』라는 작품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시골 마을의 삶, 잊힌 사람들, 공동체의 가치 등을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해 왔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사람 냄새’가 배어 있고, 도회적 세련됨보다는 흙냄새 나는 일상의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적 세계는 정읍이라는 도시와 절묘하게 겹친다. 정읍은 여전히 전통시장이 활발하고, 시내 외곽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으며, 마을 어귀에는 오래된 정자와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 현대화된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이 정감 있는 장면들이 신경림의 시 속 구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그의 시 「갈대」나 「농무」에 등장하는 ‘버려진 시골의 풍경’과 ‘잊힌 사람들’은, 정읍의 조용한 동네에서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때문에 정읍에서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가 서로를 반영하며 더욱 깊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경험이 된다. 특히 정읍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 문학관 조성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신경림의 시 정신을 반영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되어 지역민과 방문객들에게 문학과 삶을 잇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3. 정읍 문학길,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시간

 

정읍 문학길은 정읍천 주변, 시립도서관, 중앙로 일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테마 탐방로로, 도시와 시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 길은 단순히 시인의 이름을 내건 산책로가 아니라, 실제로 시와 접촉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어 문학적 몰입도를 높여준다. 벤치에는 시구절이 새겨져 있고, 나무 아래에는 QR코드가 부착되어 있어 시인의 낭독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거리 곳곳에는 지역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시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시 정류장’이라는 이름의 설치물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문학을 만나는 구조를 제공하며, 시의 대중화와 지역 문화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인의 언어가 마치 도시의 숨결처럼 느껴지고, 길 하나하나가 시집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정읍시는 이러한 문학길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계절별 테마 문학 행사와 문학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타 지역 방문객들에게도 높은 만족도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인프라를 넘어서, 도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문학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려는 진지한 시도로 읽힌다.

 

4. 문학이 도시를 바꾼다, 정읍이 보여주는 가능성

 

정읍은 신경림이라는 상징적인 시인을 통해 ‘문학이 도시의 기획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유명 시인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적 언어가 실제로 도시의 골목과 풍경, 사람들 속에 스며들도록 노력한 흔적이 도시 전반에 녹아 있다. 특히 정읍시가 시도한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지역 중학생들과 시민 시 동호회가 함께 참여하는 ‘우리 동네 시 쓰기’ 캠페인은 실제 문학길의 표지판에 선정 작품을 게시함으로써, 주민 스스로가 문화의 주체가 되게 한다. 또한 해마다 열리는 ‘정읍 문학 걷기 축제’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시 낭송가, 해설가, 체험가로 참여하며 문학을 생활로 끌어들이는 구조를 완성한다. 신경림의 시는 이렇게 도시 전체와 소통하며, 문학이 도시를 바꾸는 실제 사례가 된다. 더 이상 정읍은 단풍과 쌍화차로만 기억되는 도시가 아니다. 정읍은 시가 있는 도시, 말이 걸리는 도시, 그리고 나의 일상에 질문을 던지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이런 정읍의 변화는 다른 소도시들에게도 문화기획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문학이 중심이 되는 도시의 풍경, 그것을 정읍은 지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