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주, 조선 인쇄문화의 중심에서
전주는 조선 시대 한글 출판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완판본(完版本)’이라는 이름은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에서 발간된 책을 뜻하는데, ‘완산(完山)’이라는 옛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 완판본은 한양의 ‘경판본’, 평양의 ‘평판본’과 함께 조선 3대 판본으로 꼽히며, 특히 한글 고전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을 대중에게 널리 퍼뜨린 주역이었다. 당시 한문 위주의 지식문화 속에서 완판본은 한글로 쓰여 서민과 여성 독자들에게까지 문학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전주는 비옥한 평야와 풍부한 곡물로 경제적 기반을 다졌고, 그 번영은 출판업과 서점 거리의 발달로 이어졌다. 인쇄소에서는 목판에 한 글자씩 정성스레 새겨 찍어낸 책이 시장으로 흘러갔고, 그것이 마을 사랑방과 장터에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시 노래와 이야기로 살아났다. 완판본 문화관은 바로 그 역사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2. 완판본 속 고전 소설과 민중의 이야기
완판본으로 출간된 책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었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부터, 『홍길동전』과 같은 고전 서사물까지, 서민의 애환과 정의, 사랑과 풍자를 담아냈다. 목판에 새겨진 활자 하나하나는 장인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었고, 그 책을 읽거나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겹쳐 보며 공감했다. 예를 들어 『흥부전』의 가난과 부자의 대비, 『춘향전』의 신분 차별과 사랑의 승리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사회의 모순과 바람을 담아낸 문학적 선언이었다. 완판본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구연과 낭독을 통해 전해졌고, 마을의 장터와 저잣거리에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문화관에 전시된 고서들을 보면,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책장이 아직도 누렇게 남아 있고, 거기에 적힌 메모나 필사 흔적에서 독자와 작가, 이야기꾼이 이어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3. 완판본 문화관, 살아 있는 전시 체험의 장
완판본 문화관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체험형 공간으로 운영된다. 1층에서는 완판본의 역사와 종류, 인쇄 기법을 소개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2층에서는 직접 목판 인쇄를 체험해볼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먹물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과정을 통해 전통 인쇄의 정교함과 시간을 배운다. 전시실 한쪽에는 고전소설 속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재현한 공간이 있어, 관람객들이 마치 소설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현대 작가들이 완판본 형식을 차용해 만든 신작을 전시하는 기획전도 열리고 있어, 옛 문학과 현대 창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구성 덕분에 완판본 문화관은 단순히 옛 책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4. 방문자가 만나는 한글 문학의 뿌리 – 방문 정보
전주 완판본 문화관은 전주의 한옥마을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하루 일정으로 함께 둘러보기 좋다. 문화관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전통 인쇄 체험, 고전소설 낭독회, 판소리 공연이 열리며, 사전 예약 시 단체 해설 투어도 가능하다. 특히 가을에는 ‘완판본 소설축제’가 개최되어, 전국에서 모인 이야기꾼과 판소리 명창이 옛이야기와 노래를 풀어낸다. 전주를 찾은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한글 고전의 숨결을 직접 느끼고, 나만의 한 장을 인쇄해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다.
방문 정보
-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 29
- 입장료: 무료
- 운영 시간: 09:00~18:00 (월요일 휴관)
- 추천 시기: 가을 ‘완판본 소설축제’ 기간
- 문의: 063-231-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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