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포돛배 위에서 시작된 문학의 흐름
여주시 남한강변에는 잔잔한 강물을 가르며 떠다니는 황포돛배가 있다. 갈색 돛을 단 이 전통 배는 단순한 유람선이 아니다. 바람을 품고, 시간을 싣고, 강을 따라 흐르는 이 배는 하나의 무대이며, 그 위에 서면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감각이 깨어난다. 어느 날, 나는 그 황포돛배 위에서 책을 펼치고 시 한 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장이 물결처럼 다가왔고, 내 안의 감정이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돛이 바람을 받아 퍼덕이며 만들어내는 고요한 울림,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리듬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풍경이 점점 단어로 바뀌고, 물살의 결이 감정의 결처럼 겹쳐졌다. 물살도, 바람도 아닌 그 사이에서 조용히 떠오른 내 마음이 곧 한 편의 시가 되었다. 황포돛배는 그 시의 시작점이었고, 남한강은 문장을 실어 나르는 종이처럼 느껴졌다.
여주 황포돛배는 단순한 전통 체험이 아니라, 자연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감정이 깨어나는 예술적 경험의 무대였다. 배 위에서 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 삶의 소음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문학이 먼 언어의 예술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흐르는 감정의 흐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강물처럼 문학은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잠시 떠 있었을 뿐이다.
2. 물결을 타고 흐르는 시선, 즉흥시 읽기 체험
돛배 위에는 즉석 시 읽기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종이 한 장에 각자 떠올린 시구를 적은 뒤 돛배 위에서 낭송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써보았다:
“강물 위 돛의 그림자처럼, 내 문장도 흐르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 즉흥 시 읽기는 단순한 낭독이 아니었다. 시와 풍경이 맞닿는 순간, 관람객 각자의 내면으로 문장이 스며들었다. 바람에 실린 말소리와 물결이 시어의 울림으로 확장되며, 황포돛배와 시가 하나의 예술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3. 전통 배와 현대 문학의 공존
황포돛배는 전통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이 문학 체험을 통해 현대인에게 새롭게 해석되었다. 작은 돛 위에는 조선 시대 문사들이 배례록에 적었을 법한 문장이 전시되었고, 방문객들은 돛배 지느러미가 흔들리는 리듬에 맞춰 읽을 수 있었다. 돛배의 물질성과 문학의 감성성이 만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고풍스러운 배의 외형과 옛 문구, 그리고 현대인의 즉흥 시가 섞여, 이곳은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은 문학 공간이 되었다.
4. 문학의 여운, 강가에서 이어지는 시의 흐름
돛배에서 내려 다리 아래 보도에 서서 낭독회를 마친 뒤, 나는 노트에 다음 문장을 적었다:
“문장은 물 위에 남긴 발자국 같고, 황포돛배는 그 발자국을 따라 흐르는 리듬이다.”
문학 체험은 떠난 뒤에도 물처럼 내 마음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여주의 강변 산책길에서 만난 참여자들은 “돛배 위 10분의 낭송이 내 하루의 리듬을 바꿔줬다”라고 했고, 어떤 이는 “강물이 내 문장을 흘려보낸 것 같다”라고 했다. 이 체험은 단지 한 점의 여행이 아니었고, 일상 속 문장을 흐르게 하는 문학의 작은 물결이었다.
"문장은 강 위에 남긴 작은 흔적이고, 황포돛배는 그 흔적을 따라 흐르는 시의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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