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팔만대장경과 문학의 뿌리, 해인사의 여백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수행이 축적된 성역이며,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장소로서 한국 불교 정신과 문학의 근원적 뿌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팔만여 장의 경판에 새겨진 경구들은 단지 종교적 진리를 담은 문장들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과 깨달음, 염원과 사색이 겹쳐진 언어이며, 그 반복과 절제의 리듬은 한 편의 시처럼 우리의 감각을 두드린다.
해인사는 그 자체로 고요한 언어다. 높은 산 속, 안개와 소나무, 기와와 돌길이 조용히 어우러진 이 공간은 ‘여백’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려주는 장소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문학의 시작을 본다. 말보다 앞서는 침묵, 문장보다 넓은 공간. 팔만대장경의 글자 하나하나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수행과 인내의 시간이며,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불교 문학이라는 정신의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해인사는 단지 종교적 성소가 아니라, 한국 문학의 근본 정서가 형성된 문학적 기원지이기도 하다. 대장경이 품은 리듬과 형식은 이후의 고승의 시문, 승려 문학, 불교적 산문양식으로까지 이어졌고, 그것은 곧 우리 문학의 한 줄기로 뻗어나갔다. 이처럼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 문학적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고요한 언어의 씨앗이 깃든 성역이다.
2. 경판의 글자, 시처럼 울리는 활자
팔만대장경의 목판에는 수많은 글자가 정갈하게 배열되어 있다. 그 글자의 배열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 편의 시처럼 울림을 전한다. 경전을 읽는 이들은 활자의 메아리를 단지 해석하지 않고, 한 글자 한 글자의 리듬을 시처럼 감지한다. 이 문단에서는 팔만대장경이 활자로서 가진 문학적 감수성과, 경전을 대하는 태도가 곧 문학적 감각이라는 점을 다룬다. 활자와 리듬이 합쳐져 경전이 문학의 경계 너머 언어 예술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3. 스승과 제자의 글, 팔만대장경에 녹아든 문학적 대화
팔만대장경은 단지 부처의 말씀을 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경판을 제작하던 승려들과 기록자로 참여한 제자들 사이에는 글을 통한 대화가 있었다. 서로의 대구 문장이나 짧은 후기가 경판 옆에 적혀 있었고, 그 문장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공동체 사이의 문학적 교류를 보여준다. 이들은 불교 경판을 제작하면서도 문학적 언어로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소소한 감정이나 감회를 기록했다. 이 체험은 문장으로 남지 않았다면 숨겨졌을, 살아 있는 문학의 교감이다.
4. 대장경 전소식과 문학적 재생의 순간
팔만대장경이 오랜 세월 형틀에서 벗어나 보존되고 복원될 때마다, 문학은 다시 재생하는 순간을 맞는다. 한때 불에 탄 경판을 재판하며 승려들은 “불길 속에서도 언어가 꺼지지 않기를” 기도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그 기도는 오늘날 불교 문학의 재생을 상징한다. 이 문단에서는 복원에 참여한 이들의 언어적 표현—간절한 염원, 새로운 서체의 채택, 복제 과정의 기록—이 문학적인 행위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흔적이 꺼지지 않기 위해 경판을 새로 쓰는 작업이야말로 문학의 기억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5. 해인사 일상과 불교 문학, 삶의 언어로 흐르다
해인사 사찰 일상 속에서 주고받는 짧은 문장은 불교 문학의 또 다른 형태다. 경전 독송 후 나누는 짧은 깨달음, 사찰 마당에서 걸으며 나누는 마음의 문장들이 삶 속에서 지속되는 불교 문학을 만든다. 한 스님은 해인사의 새벽 종소리에 대해 “종은 단지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오늘의 시다”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언어들은 살아있는 문학이며, 팔만대장경의 전통을 현재 삶으로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문학은 곧 일상의 깨달음이고, 경전과 일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생생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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