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은진미륵과 골목 시집 한 권: 시간의 숨결을 품은 문학여정

 

1. 은진미륵 아래 시집으로 맞이한 하루

 

논산 은진미륵불 앞에 서면, 거대한 석불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웅장한 조각이지만, 그 얼굴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어느 흐린 날, 나는 이 미륵불 앞 돌계단에 앉아 오래된 시집 한 권을 꺼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놀랍도록 고요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시인의 문장과 미륵의 미소가 조용히 공명하며, 공간이 감정의 울림으로 채워졌다. 그곳에서 글은 단지 읽히는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으로 깨어났다.

 

은진미륵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침묵의 존재이자, 사람들의 감정을 비추는 무언의 거울이다. 시집의 문장이 그 침묵에 닿는 순간, 감정은 더 정제되고 고요해졌다. 마치 오랜 시간 묵언수행을 해온 존재 앞에서, 인간의 언어가 처음으로 제대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진미륵은 말이 없지만, 그 앞에 앉은 시인은 문장의 결을 통해 말없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날의 독서는 단지 책을 읽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비우고, 감각을 열고, 문학과 함께 머무는 작은 수행이었다. 은진미륵불 아래에서의 한 시간은, 한 편의 시처럼 조용했고, 삶을 정리해주는 듯 깊었다.

그 미소 아래에서 맞이한 하루는 문학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문장은 오래된 골목에 스며들고, 시집 한 권이 작은 불상 아래서 반짝인다."

 

2. 골목길에서 시작된 독서행보

 

은진미륵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골목 벽에는 낡은 기왓장과 작은 벽화들이 남아 있고, 집집마다 오래된 나무 문간이 나를 시집 구절로 이끌었다. 시집을 한 구절 읊으며 걷자, “낡은 골목이 시집의 페이지처럼 펼쳐지고, 문장 하나가 벽돌 틈새에 스며든다”는 감각이 올라왔다. 이 장소의 구조와 풍경이 곧 시의 배경이 아니라, 내 시선을 문학으로 인도한 무대가 된 것이다.

 

3. 즉흥 낭송회, 골목에서 모여든 글의 울림

 

작은 골목 한쪽에서는 즉흥 낭송회가 열렸다. 각자가 손에 든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읽고, 그 감정을 짧은 문장으로 이어 적었다. 나는 “은진미륵의 우물 물결처럼, 시 줄기가 골목 안으로 출렁인다”라고 적고 소리 내어 읊었다. 그 순간 낭송된 시 구절은 강한 울림이 되었고, 골목은 하나의 무대가 되어 시가 퍼져 나갔다. 작은 공간이 문학의 현장이 되었고, 낭독과 반응이 공간을 채운 채로 흐르는 경험이었다.

 

4. 문장이 골목으로 퍼지는 시간

 

낭송 후 참가자들은 모두 각자 쓴 문장을 골목 벽에 잠시 매달았다. 어떤 이는 “시 한 줄이 은진미륵의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문장은 골목 벽을 타고 반짝거린다”라고 썼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문장이 공간에 스며들고 존재감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문장이 골목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텍스트가 아닌 감정의 흐름이 되었다.

 

5. 문학 체험의 여운, 일상으로 이어지는 문장

 

골목 체험을 마치고 찻집에 앉았을 때,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골목 시집 한 권이 내 하루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고. 한 순간의 문학적 체험은 일상이 되었고, 문장은 삶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은진미륵과 골목, 시집 한 권이 만들어낸 여운은 단지 체험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되었다. 문학은 곧 장소에 스며들고, 장소는 문학을 품어 삶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