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 속 세상이 현실로 내려앉은 곳, 하동 평사리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하다. 드넓은 들판과 섬진강, 그리고 그 너머로 굽이치는 지리산 능선이 소설 『토지』의 첫 장면처럼 다가온다. 바로 이곳이 박경리 대하소설의 주요 무대이자, 이야기의 숨결이 살아 있는 마을이다. 특히 ‘최참판댁’은 단순한 촬영 세트가 아니라, 소설 속 시대와 인물들이 숨 쉬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문학의 현장이다. 기와지붕 너머로 보이는 산자락과 마당을 스치는 바람까지, 이곳의 모든 요소가 소설의 문장을 배경 삼아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2. 최참판댁, 소설과 역사가 만나는 무대
최참판댁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지만, 그 본질은 박경리의 문학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하나의 ‘입체 소설’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우물과 사랑채가 있고, 안채와 행랑채가 둘러싸여 있어 19세기 양반가의 위엄과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관람객은 건물 구조와 생활도구를 보며 단순히 과거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속 인물들의 숨결과 감정을 읽어낸다. 특히 마루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희와 길상의 대화가 바람결에 섞여 들려오는 듯하다. 이곳은 역사와 문학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살아 있는 배경’이었다.
3. 문학이 이어지는 길, 평사리의 사계
최참판댁을 나서면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변이 이어진다. 봄에는 유채꽃과 매화가, 여름에는 푸른 논과 강물이, 가을에는 황금빛 벼가 소설 속 계절처럼 바뀌어 간다. 이 풍경은 박경리의 문장처럼 느리지만 깊이 있게 변한다. 매년 가을이면 ‘평사리 문학제’가 열려, 낭독회와 토론, 음악 공연이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다. 방문객은 그 행사의 일부가 되어 『토지』 속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경험한다. 하동 최참판댁은 단지 한 번 보고 떠나는 관광지가 아니라, 책 속 세계가 계절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다시 읽고 싶어지는 문학의 현장이었다.
'소도시 문화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평 이효석 문학관, 메밀꽃 향기 따라 걷는 소설 속 길 (0) | 2025.08.22 |
---|---|
안동 하회마을, 강과 마을이 품은 선비의 글 (0) | 2025.08.21 |
진안 마이산 탑사, 돌탑 속 숨은 이야기의 조각들 (1) | 2025.08.20 |
예산 추사고택, 문방사우와 함께한 사색의 하루 (0) | 2025.08.19 |
괴산 산막이 옛길, 산문의 호흡으로 오르다 (3) | 2025.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