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절집엔, 말보다 먼저 도착한 문장이 있다.” 1. 남도의 끝자락, 대흥사에 깃든 고요한 울림 전남 해남의 깊은 산자락에 숨듯 자리한 대흥사는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니었다. 남도의 끝자락, 두륜산 품 안에 안긴 이 절은 오랜 시간 동안 수행자와 문인, 사상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진 사색의 공간이었다. 계곡 소리마저 낮게 울리는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시간이 머무는 감각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조선 후기, 유교의 형식이 점차 경직되어 갈 무렵, 많은 선비들이 오히려 이 불교 사찰을 찾아 글과 마음을 다시 돌아보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곳은 소치 허련, 정약용, 초의선사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절 안의 작은 암자에 머무르며, 자연 속에서 사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