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문화 탐방기

고창 선운사와 도솔암, 전설과 불교시의 만남

easy-info1 2025. 7. 29. 14:15

 

1. 선운사의 기도 소리, 전설을 품은 절집

 

전북 고창에 위치한 선운사는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니었다. 절에 들어서는 순간, 깊은 산사의 고요함 속에서 오랜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곳이 그저 기와와 돌로 지어진 건물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운사는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수행자와 참배객들의 기도를 품어온 사찰이었다. 마당의 돌바닥은 수없이 오간 발걸음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었고, 대웅전 뒤편으로 흐르는 작은 시내 소리까지도 수행의 시간과 맞물려 흐르고 있는 듯했다. 그 속에서 전해지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바로 백제 무왕과 선운사의 인연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무왕은 젊은 시절 방황하던 중 이곳 선운사에서 수행 중이던 한 고승을 만나 마음을 돌리게 되었고, 훗날 왕이 된 후 이 절을 후원하며 창건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를 넘어,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삶의 방향을 되묻는 사색의 시작점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가 찾았던 날, 선운사의 대웅전에서는 스님들의 낮은 염불 소리가 계곡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뒤편에 자리한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사색을 이끌었고, 길가에는 전설 속 이야기를 안내하는 작은 표지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선운사는 시간이 새긴 이야기와 기도의 숨결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단지 오래된 절이 아니라, 사람들의 고요한 물음과 삶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설화의 장이었다.

 

2. 도솔암의 절벽, 부처와 시의 만남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지만,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오히려 걷는 이를 부드럽게 끌어당긴다. 절벽 위에 아슬하게 세워진 도솔암은 하늘과 가까운 사유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도솔천’의 이름을 딴 유래가 전해지는데, 바로 부처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전설이다. 하지만 도솔암이 전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바로 불교 시문학과의 만남이다. 옛 스님들이 이곳에서 남긴 시구들은 단순한 종교적 언어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 고통과 해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다.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내 마음을 씻고, 구름 아래서 피는 꽃은 욕심을 태운다”는 구절처럼, 이곳은 시가 설법처럼 흐르는 절집이었다.

 

 

“전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에 시로 다시 피어날 뿐.”

고창 선운사와 도솔암, 전설과 불교시의 만남

 

3. 꽃무릇과 선운사의 시적 정취

 

가을이 되면 선운사는 온통 붉은 꽃무릇으로 덮인다. 이 꽃은 전설 속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핀다고 전해지며, 불교의 윤회 사상을 은유하는 대표적 상징이다. 누군가는 이 꽃밭을 두고 ‘삶과 죽음 사이에 피어난 시’라고 표현했다. 선운사를 찾은 많은 시인들은 이 꽃의 정서에서 영감을 얻어, 불교의 공(空) 사상과 감정의 무상함을 담은 시들을 남겼다. “세속의 길 위에 피어난 붉은 문장들”이라는 표현처럼, 꽃무릇은 단지 자연의 장식이 아니라, 문학적 감정과 불교 사유가 교차하는 징표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금 절집을 하나의 시집처럼 만들었다.

 

4. 전설이 시가 되는 절, 선운사라는 문학 공간

 

선운사와 도솔암의 전설은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각자의 삶을 투영시키는 순간, 전설은 다시 시가 된다. 한 수행자의 고행은 현대인의 번민과 연결되고, 한 줄의 옛 시구는 오늘을 사는 이의 내면을 어루만진다. 이렇듯 선운사는 전설과 시가 교차하며 지금도 쓰이고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다. ‘산은 말이 없지만 시를 품고 있다’는 말처럼, 이 사찰의 고요함은 침묵이 아니라, 문장 이전의 감정이 응축된 상태다. 그래서 걷는 이의 마음에 따라, 선운사는 달리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회한이고, 누군가에게는 위안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다. 문학적 상상력은 이 고찰의 향기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