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문화 탐방기

남해 다랭이마을, 삶의 고단함을 시로 풀어낸 공간

easy-info1 2025. 7. 31. 16:32

 

1. 절벽 끝에 쌓아 올린 삶의 문장

 

남해 다랭이마을은 산과 바다 사이, 가파른 절벽 위에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독특한 마을이었다. 이곳은 평지를 허락받지 못한 이들이 선택한 삶의 자리였고, 그들은 산비탈을 깎아내고 돌을 쌓아가며 터전을 일구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논과 밭이 마치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마을을 걸어보니 평평한 길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비틀린 골목, 좁은 돌계단, 굽이진 밭둑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안에 사람이 자연과 타협하며 살아온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논 하나하나에는 단순한 경작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삶의 무게를 버티고 일어선 사람들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풍경은 단지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논,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돌담, 낮게 깔린 지붕들… 이 모든 장면은 자연이 주었다기보다, 고단한 노동이 깎아낸 결과에 가까웠다. 절벽 위에 뿌리 내린 삶의 문장들은,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를 견디며 지금의 모습을 이뤄낸 것이었다.

 

다랭이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존의 역사’였다. 그 풍경 안에서 문학을 찾는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써놓은 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자국과 손길이 새겨놓은 일상의 언어일 것이다.

남해 다랭이마을, 삶의 고단함을 시로 풀어낸 공간

 

2. 농토보다 단단한 마음, 생존의 미학

 

다랭이마을의 주민들은 한 평 한 평의 땅을 얻기 위해 삽 대신 손으로 돌을 나르고 다듬었다. 비가 오면 무너지고, 해가 지면 가려지는 그 비탈 위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논과 밭의 구조는 단순히 농사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 안에서 최소한의 반항으로 쌓아 올린 삶의 전략이었다. 이곳에선 누군가의 생이 곧 땅이 되고, 땅이 다시 식탁을 채운다. 다랭이 논은 단지 곡식을 키우는 곳이 아닌, 마음의 무게를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그래서 다랭이마을의 풍경은 말없이도 깊고 단단하다.

 

3.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들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일은 거창한 문장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일상이 곧 시가 되는 장소, 바로 다랭이마을이다. 새벽의 물안개, 아침 닭의 울음, 갈매기보다 먼저 눈뜨는 농부의 발소리까지. 모두가 한 편의 시가 된다. 외부에서 찾아온 시인들은 이 마을의 풍경을 ‘노동의 서정시’라 표현했다. 일하는 손의 굳은살, 밭 사이를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냄새까지도 그들에게는 문장이다. 이곳에서는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을 부르는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바다와 논 사이에서 자라난 감정들

 

남해의 바다와 산이 마주하는 이곳에서는 감정조차도 단순하지 않다. 바람은 세차고 파도는 거칠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로 피어난 감정들은 유연하고 섬세하다. 다랭이논에서 자란 감정은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한 문학인은 이곳에서 받은 인상을 “무거운 현실 위를 유영하는 희망”이라 말했다. 바다를 보며 희망을 품고, 논을 보며 삶의 무게를 체감하고, 다시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다짐한다. 이 과정은 결국 한 편의 시가 완성되는 과정과 닮았다. 다랭이마을은 고단한 현실의 틈새에서 피어난 작고 단단한 정서의 꽃이다.

 

5. 시간이 멈춘 풍경, 기억을 품은 마을

 

다랭이마을은 개발의 손길에서 비껴간 덕분에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 있는 곳이다. 골목의 돌담, 낡은 초가지붕, 사람의 손으로 길들여진 논둑은 모두 시간이 만든 풍경이다. 이 마을의 풍경은 그 자체로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잊힌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는 과거. 주민들의 말투, 삶의 리듬, 하루의 흐름까지도 30년 전, 5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외부인이 이곳을 찾으면 마치 기억 속 시절로 순간이동한 듯한 이질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다랭이마을은 시간의 시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공간이다.

 

6. 다랭이마을, 오늘의 시인에게 보내는 초대장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속도에 시달리고 있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고, 빨리 소비하고, 즉각 반응해야 하는 삶. 그러나 다랭이마을은 느림의 언어로 시를 쓰는 마을이다. 그 속도는 느리지만, 감정은 깊고 진하다. 시인은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은지를 다시 묻는다. 어쩌면 다랭이마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멈추는 감각’ 일지도 모른다. 멈추고, 느끼고, 바라보고, 다시 걷는 것.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문장은 결국 마을을 품은 삶의 기록이 된다. 다랭이마을은 시를 쓸 줄 모르는 이에게도 시를 가르쳐주는, 조용한 스승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