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밭 위에 피어난 문학, 보성만의 감성 축제
보성은 오랫동안 ‘차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계단처럼 이어진 녹차밭은 사계절마다 서로 다른 색감과 향기를 뿜어냈고, 그 안에서 문학이 피어나는 순간은 해마다 축제처럼 돌아왔다. 내가 보성 문학축제를 찾았던 날도, 햇살 아래 반짝이는 차잎 사이로 시 낭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보성 문학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었다. 차문화와 시문학이 함께 숨 쉬는 국내 유일의 감성형 문학축제로, 이곳에서는 차를 마시며 시를 쓰고, 시를 읽으며 자연을 감상하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초청된 시인과의 대화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고 짧은 시를 함께 낭독했으며, 일부는 즉석에서 시를 써보는 체험에도 참여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축제장 한편에 마련된 ‘차밭 낭독회’였다. 작게 꾸며진 야외 무대에 시인들이 올라 자유롭게 시를 낭송했고, 관객들은 돗자리를 펴고 차를 음미하며 그 풍경을 감상했다. 책상과 강연장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으로 시를 느끼는 경험은 다른 문학축제와는 분명히 달랐다.
보성 문학축제는 ‘보는 축제’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음미하는 문학의 시간이었다. 차밭 위에서 시가 태어나고, 사람들 사이에서 문장이 오갔다. 이곳에서는 문학이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경험이 가능했고, 차 한 잔이 시 한 줄과 나란히 놓이는 진정한 ‘생활 속 문학’이 구현되고 있었다.
2. 차향 속에서 시를 마시다 – 감각의 교차
보성 문학축제의 중심에는 늘 녹차 향기가 배경처럼 흐르고 있다. 차를 따르는 손길과 시를 읊는 목소리가 교차하는 장면은 이 축제만의 진풍경이다. 참여자들은 마치 시 한 구절을 마시는 듯한 경험을 한다. 다례 시연 후 이어지는 ‘차향 낭독회’에서는 시인이 직접 쓴 시를 차와 함께 전달한다. 차의 온도가 시의 리듬을 결정짓고, 찻잔에 담긴 색은 시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이때의 시는 종이 위에 머무르지 않고, 입과 코, 피부와 귀를 통해 몸 전체로 스며드는 언어가 된다. 보성의 차밭은 감각의 통로이자, 문학의 무대가 된다.
3. 시인의 발걸음이 만든 차밭의 기록
보성 문학축제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시인과 작가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지 강연자가 아니라 현장의 산책자이자 기록자로 기능한다. 녹차밭을 함께 걷고, 그 위에서 시를 구상하거나 관람객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이런 순간들은 행사의 외형보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실제로 몇몇 시인들은 보성 문학축제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차밭과 사람들에 관한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이 시들은 축제의 기록을 넘어서, 보성의 풍경과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축제는 단지 문학을 소비하는 자리가 아닌, 문학을 함께 빚는 공동의 체험 공간이 된다.
4. 차밭에서 피어난 공감, 문학의 본질을 마주하다
보성 문학축제가 특별한 이유는, 이곳에서 만나는 문학이 지식이나 권위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잔의 차를 들고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마음이 움직이면 낭송에 참여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동반한 여행자이고, 또 다른 이들은 지역 어르신이다. 이들이 나누는 시와 차의 순간은, 다름 아닌 삶의 공감에서 비롯된 문학의 본질이다. 복잡한 형식도, 이해를 강요하는 논리도 없다. 오직 차의 향과 시의 결,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을 뿐이다. 보성의 차밭은 그렇게 문학이 다시 사람을 향해 다가가는 공간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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