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곽에 비친 달빛, 첫 잔의 문장으로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성의 성벽 아래에서 나는 잔을 하나 꺼냈다. 해가 완전히 저문 뒤, 달빛이 성곽의 돌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 고요한 산속, 말없이 견고한 돌성벽, 그리고 한 잔의 술이 만들어낸 분위기 속에서 시인은 노트를 펼쳤다.
“적상산성 돌 하나하나가 달빛 아래에서 술 한 잔의 문장이 되었다.”
그 문장은 마치 오래된 전각의 기와 위로 떨어지는 이슬처럼 조용히 시작되었다.
성곽의 돌은 수백 년 전부터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밤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 위에 내려앉은 달빛은 시간을 비추는 동시에, 감정을 끌어올리는 불빛이었다.
술 한 잔은 그 감정을 천천히 풀어내는 장치였고,
그 순간의 조우—성벽과 술잔, 달빛과 문장—은 내게 문학의 시작처럼 다가왔다.
달빛은 말없이 풍경을 감싸고, 술은 몸 안의 침묵을 깨운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첫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한밤의 사색이었다.
나는 그날 적상산성 아래서 깨달았다.
문학은 때로 아주 작고 조용한 의식처럼, 술 한 잔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
2. 술잔을 따르는 손길, 시선이 술에 머물다
잔잔한 산바람이 술잔 위 유리를 간질였다. 나는 노트에 이렇게 썼다. “술잔 위로 떠오르는 달빛처럼, 시선은 술 위에서 문장으로 진동했다.” 술잔 속 술잔이 흔들림은 곧 글자의 리듬으로 이어졌다. 술을 한 모금 머금을 때마다,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인의 감각을 물들인 잉크가 되었다. 이 문단은 ‘술잔과 시선의 교감’을 강조한 체험 중심이다.
3. 산성 아래 벤치, 즉흥 시 창작의 터
적상산성 아래 목조 벤치에서는 즉흥 시를 쓰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참여자들은 술잔을 들고 자신의 감정을 한 줄 시로 남겼다. 내가 쓴 문장은 이랬다: “고요한 성곽 아래 술잔 하나가, 내 안의 시심을 촉발시켰다.” 참여자들이 서로의 문장을 낭송하고 박수를 보내는 순간은 술과 문학, 공간이 순간적 공동체로 연결된 경험이었다.
4. 여운 가득 담긴 마지막 잔, 문장은 술보다 오래 남는다
체험을 마친 뒤 나는 노트를 접으며 메모했다. “술은 입 속에서 사라지지만, 그날 쓴 문장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었다. 한 참여자는 “적상산성 아래 술잔 하나가 내 삶의 작은 밤으로 자리 잡았다”라고 했다. 문장은 장소와 함께 삶 속에 잔잔한 파도처럼 흐른다. 술 한 잔은 문학의 시작이었고, 문장은 일상의 여운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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