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낡지 않는다, 글로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는.” 1. 항구의 얼굴, 기억이 머무는 장소 군산 근대문학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단순히 문학작품이나 작가의 흔적을 마주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는 군산이라는 도시가 품어온 항구의 정서, 그리고 시대의 단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낡은 건물의 외벽, 서늘한 내부의 공기, 한 장씩 넘겨진 시집들 사이로 도시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항구는 언제나 배와 사람, 이야기의 집결지였다. 군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곡물 수탈의 통로로, 해방 이후에는 고단한 삶과 엇갈린 희망의 무대로 기능했던 이 도시는, 무명의 문학인들에게 있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출구였다. 그들은 군산의 골목과 부두, 기차역과 선술집을 무대로 시와 소설을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