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7 3

영덕 블루로드와 파도소리, 지역 설화로 본 문학적 상상력

1. 파도가 말을 거는 길, 블루로드의 서사 경북 영덕에 위치한 블루로드는 단순한 해안 산책로가 아니었다. 이 길은 바다와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간 하나의 문학적 서사처럼 느껴졌고, 걷는 동안 나는 바람과 파도, 햇살의 리듬에 따라 마음이 천천히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 블루로드는 총 4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A코스는 축산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바다 마을의 일상을 담은 길이었고, B코스는 창포말등대와 강구항 사이를 따라 걷는 길로, 절벽과 바다가 맞닿는 드라마틱한 풍경이 펼쳐졌다. C코스와 D코스는 각각 푸른 숲과 조용한 어촌 마을을 지나며, 걷는 이에게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파도는 늘 같은 소리를 내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

울진 금강송 숲길에서 전해지는 설화와 자연서정시

“설화는 숲에 묻히지 않는다. 그건 지금도 누군가의 걸음 속에서 다시 써지고 있다.” 1. 천년의 숲, 전설이 잠든 길을 걷다 울진 금강송 숲길은 단순한 삼림 산책로가 아니었다. 수백 년 전부터 이곳은 사람과 자연, 전설과 신앙이 함께 어우러져 온 살아 있는 신화의 공간이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양옆으로 키 높이 솟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고, 그늘 아래로는 천천히 흐르는 바람이 지나가며 조용한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었다. 금강송이라 불리는 이 소나무들은 예로부터 왕실 건축의 최고급 재목으로 쓰였을 만큼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숲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건 목재보다 더 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숲을 ‘말하는 숲’이라 불렀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서로 이야기..

해남 대흥사, 고요한 사찰에서 만난 선비의 글결

“고요한 절집엔, 말보다 먼저 도착한 문장이 있다.” 1. 남도의 끝자락, 대흥사에 깃든 고요한 울림 전남 해남의 깊은 산자락에 숨듯 자리한 대흥사는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니었다. 남도의 끝자락, 두륜산 품 안에 안긴 이 절은 오랜 시간 동안 수행자와 문인, 사상가들의 발걸음이 이어진 사색의 공간이었다. 계곡 소리마저 낮게 울리는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시간이 머무는 감각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조선 후기, 유교의 형식이 점차 경직되어 갈 무렵, 많은 선비들이 오히려 이 불교 사찰을 찾아 글과 마음을 다시 돌아보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곳은 소치 허련, 정약용, 초의선사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절 안의 작은 암자에 머무르며, 자연 속에서 사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