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문화 탐방기 49

함평 나비축제 속 문학 체험 프로그램 리뷰

1. 문학과 나비의 만남, 감각이 열리는 첫걸음 전라남도 함평의 나비축제는 단지 자연을 관찰하는 축제가 아니다. 해마다 이곳에선 나비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그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은 체험이 있다. 바로 나비의 섬세함과 문학의 촉각이 만나는 ‘문학 체험 프로그램’이다. 나비 해설 길을 따라 축제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중간에 작은 부스 하나가 보인다. 그곳에서 방문객들은 나비에 관한 시와 수필을 읽고, 직접 글을 써보는 조용한 체험의 시간을 갖는다. 처음엔 안내자가 나비의 생태와 생명 주기를 짧게 이야기해준다. 그 후 종이와 펜이 건네지고, 참가자들은 나비를 바라보며 느낀 것을 한 줄이라도 적어보라는 말을 듣는다. 단순한 글쓰기 체험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은 사실 감각이 열리고, ..

논산 은진미륵과 골목 시집 한 권: 시간의 숨결을 품은 문학여정

1. 미륵불 아래 시집 한 권, 문학이 깨어난 자리 충청남도 논산의 은진미륵불은 거대한 돌조각이다. 하지만 그 앞에 서면, 웅장함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고요다. 마치 세상의 말들이 이곳에서 멈추는 듯한 침묵이 공간을 감싸고 있다. 그날, 나는 은진미륵 앞 좁은 골목에 앉아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시인의 문장이 바람을 타고 미륵의 발치로 흘러들었고, 나는 알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거대한 돌의 눈동자가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그 아래에서, 시 한 줄은 뜻밖의 온기를 품고 내게 다가왔다. “문장이 은진미륵의 바람이 되어 불렀다.” 그 순간, 나는 그 문장을 듣는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돌은 무겁고 단단하지만, 그 앞에서 펼쳐진 문장들은 오히려 더 부드럽고 깊게 울렸다. 침묵의 공간에서 시작된 문학은 ..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교 문학의 상관관계

1. 팔만대장경과 문학의 뿌리, 해인사의 여백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수행이 축적된 성역이며,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장소로서 한국 불교 정신과 문학의 근원적 뿌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팔만여 장의 경판에 새겨진 경구들은 단지 종교적 진리를 담은 문장들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과 깨달음, 염원과 사색이 겹쳐진 언어이며, 그 반복과 절제의 리듬은 한 편의 시처럼 우리의 감각을 두드린다. 해인사는 그 자체로 고요한 언어다. 높은 산 속, 안개와 소나무, 기와와 돌길이 조용히 어우러진 이 공간은 ‘여백’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려주는 장소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문학의 시작을 본다. 말보다 앞서는 침묵, 문장보다 넓은 공간. 팔만대장경의 ..

여주 황포돛배와 시의 리듬: 강을 따라 흐르는 문학

1. 황포돛배 위에서 시작된 문학의 흐름 여주시 남한강변에는 잔잔한 강물을 가르며 떠다니는 황포돛배가 있다. 갈색 돛을 단 이 전통 배는 단순한 유람선이 아니다. 바람을 품고, 시간을 싣고, 강을 따라 흐르는 이 배는 하나의 무대이며, 그 위에 서면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감각이 깨어난다. 어느 날, 나는 그 황포돛배 위에서 책을 펼치고 시 한 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장이 물결처럼 다가왔고, 내 안의 감정이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돛이 바람을 받아 퍼덕이며 만들어내는 고요한 울림,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리듬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풍경이 점점 단어로 바뀌고, 물살의 결이 감정의 결처럼 겹쳐졌다. 물살도, 바람도 아닌 그 사이에서 조용히 떠오른 내 마음이 곧 한 편의 시가 되..

강릉 경포대, 허균과 허난설헌의 숨결을 따라서

1. 역사의 바람이 머문 곳, 경포대와 허균 강릉 경포대는 단순한 정자나 전망대가 아니었다. 이곳은 조선 문학과 역사가 맞닿는 지점이었고, 바다와 호수, 그리고 언어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었다. 푸른 경포호 너머로 바람이 밀려오고, 정자 아래를 흐르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문학은 바람처럼 읽히고, 기억은 바람에 실려 온다는 말을 문득 떠올렸다. 경포대는 허균이 혁신적인 글을 남기던 곳이자, 그의 누이인 허난설헌이 시심을 키운 풍경이 머물던 땅이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단지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고,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언어의 감각이 숨어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들의 문장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바람은 지금도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허균은 ..

양양 낙산사에서 시조를 읽으며 떠나는 마음여행

1. 시조와 파도의 만남, 낙산사의 서정 양양 낙산사 대웅전 앞에 섰을 때, 바닷바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절 바로 아래 펼쳐진 해안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조용히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전통 시조는 본래 조용하고 정적인 언어이지만, 그날 낙산사의 파도와 어우러져 특별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시조의 짧고도 깊은 울림은 파도의 주기와 겹쳐지며 내 안으로 흘러들었고, 고요한 산사 속에서 소리와 언어, 정서가 맞물리는 순간을 체험하게 했다. 매번 반복되는 파도 소리 속에서도 시조는 같은 울림을 주지 않았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자연과 문학이 만나는 경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시처럼 느껴졌다. 특히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작은 벤치 위에..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쓴 시 한 편

"문장은 내 발자국 위에 떨리고, 숲길은 그 떨림에 시를 남긴다." 1. 시가 시작된 길, 메타세쿼이아 숲의 울림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은 단순히 나무가 늘어선 산책로가 아니었다. 숲길 입구에 들어선 순간, 풍성한 초록빛 터널이 마치 한 겹의 비단처럼 몸을 감싸안았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하나가 시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나무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 이따금 햇살이 스며드는 가지 사이의 틈, 그리고 땅을 살짝 스치는 바람의 리듬이 어느새 한 줄 시가 되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는 나무 앞에 멈춰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었고 그 순간마다 떠오른 이..

밀양 아리랑 문학관, 민속과 문학이 공존하는 공간

1. 고향 소리의 중심, 아리랑 문학관의 공간성 밀양 아리랑 문학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었다.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아리랑의 탄생과 확산’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고, 이곳에서는 밀양 아리랑의 역사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불리는 아리랑의 변주를 영상과 음향으로 체험할 수 있게 구성돼 있었다. 전시관 내부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 구조였다. 전시실 사이에는 작은 쉼터들이 놓여 있었고, 조용한 조명 아래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앉아 쉬거나 사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특히 벽면에는 “노래는 곧 고향이다” 같은 시적인 문장이 새겨져 있어 관람 흐름 속에 감성을 덧입히는 장치로 작용했다. 해당 문구가 쓰인 공간은 사진 명소로도 유명했다...

강진 영랑생가 문학제, 시인의 고향에서 피어난 문장들

“문장은 고향에서 태어나 삶으로 자란다.” 1. 고향의 뿌리, 강진 영랑생가에서 문학이 시작되다 강진에 위치한 영랑생가는 단순한 고택이 아니었다. 김영랑 시인이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이 집은, 그의 시어와 정서가 오롯이 스며 있는 살아 있는 문학 공간이었다. 낮은 담장과 초록 기와지붕, 그리고 마당을 감싸는 꽃나무들은 시인의 감수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고, 조용한 골목 안 그 풍경만으로도 시 한 줄이 떠오를 만큼 운치가 깊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영랑생가 문학제’가 열린다. 내가 찾았던 날은 축제의 첫날이었고, 생가 마당 한가운데에는 작은 시화전이 마련돼 있었다. 고운 한지에 적힌 시들이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릴 때마다, 김영랑의 시 속 언어가 다시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과 방..

고성 탈놀이와 지역 구술문학의 의미

1. 고성 탈놀이, 지역 정서의 살아 있는 유산 경남 고성에서 전해 내려오는 탈놀이는 단순한 전통 공연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낸 집단 기억의 형식이었다. ‘고성오광대’라 불리는 이 탈놀이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속 예술로, 오늘날까지도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탈놀이 중 하나였다. 현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도 지정되어, 문화적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내가 이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넓은 야외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극이 시작됐다. 각 등장인물은 과장된 몸짓과 강한 표정으로 관객 앞에 섰고,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시대와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양반과 파계승, 하인 등 계층 간 갈등을 풍자하는 장면에서는, 객석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