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7 4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교 문학의 상관관계

1. 팔만대장경과 문학의 뿌리, 해인사의 여백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천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과 수행이 축적된 성역이며,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장소로서 한국 불교 정신과 문학의 근원적 뿌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팔만여 장의 경판에 새겨진 경구들은 단지 종교적 진리를 담은 문장들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과 깨달음, 염원과 사색이 겹쳐진 언어이며, 그 반복과 절제의 리듬은 한 편의 시처럼 우리의 감각을 두드린다. 해인사는 그 자체로 고요한 언어다. 높은 산 속, 안개와 소나무, 기와와 돌길이 조용히 어우러진 이 공간은 ‘여백’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려주는 장소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문학의 시작을 본다. 말보다 앞서는 침묵, 문장보다 넓은 공간. 팔만대장경의 ..

여주 황포돛배와 시의 리듬: 강을 따라 흐르는 문학

1. 황포돛배 위에서 시작된 문학의 흐름 여주시 남한강변에는 잔잔한 강물을 가르며 떠다니는 황포돛배가 있다. 갈색 돛을 단 이 전통 배는 단순한 유람선이 아니다. 바람을 품고, 시간을 싣고, 강을 따라 흐르는 이 배는 하나의 무대이며, 그 위에 서면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감각이 깨어난다. 어느 날, 나는 그 황포돛배 위에서 책을 펼치고 시 한 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장이 물결처럼 다가왔고, 내 안의 감정이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돛이 바람을 받아 퍼덕이며 만들어내는 고요한 울림,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리듬은 마치 시의 운율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풍경이 점점 단어로 바뀌고, 물살의 결이 감정의 결처럼 겹쳐졌다. 물살도, 바람도 아닌 그 사이에서 조용히 떠오른 내 마음이 곧 한 편의 시가 되..

강릉 경포대, 허균과 허난설헌의 숨결을 따라서

1. 역사의 바람이 머문 곳, 경포대와 허균 강릉 경포대는 단순한 정자나 전망대가 아니었다. 이곳은 조선 문학과 역사가 맞닿는 지점이었고, 바다와 호수, 그리고 언어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었다. 푸른 경포호 너머로 바람이 밀려오고, 정자 아래를 흐르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문학은 바람처럼 읽히고, 기억은 바람에 실려 온다는 말을 문득 떠올렸다. 경포대는 허균이 혁신적인 글을 남기던 곳이자, 그의 누이인 허난설헌이 시심을 키운 풍경이 머물던 땅이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단지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고,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언어의 감각이 숨어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들의 문장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 바람은 지금도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허균은 ..

양양 낙산사에서 시조를 읽으며 떠나는 마음여행

1. 시조와 파도의 만남, 낙산사의 서정 양양 낙산사 대웅전 앞에 섰을 때, 바닷바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절 바로 아래 펼쳐진 해안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조용히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전통 시조는 본래 조용하고 정적인 언어이지만, 그날 낙산사의 파도와 어우러져 특별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시조의 짧고도 깊은 울림은 파도의 주기와 겹쳐지며 내 안으로 흘러들었고, 고요한 산사 속에서 소리와 언어, 정서가 맞물리는 순간을 체험하게 했다. 매번 반복되는 파도 소리 속에서도 시조는 같은 울림을 주지 않았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자연과 문학이 만나는 경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시처럼 느껴졌다. 특히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작은 벤치 위에..